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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은 단순하지만, 대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더 많이 가진 뒤에야 살겠다는 사람도 있고, 더 안정된 자리에 오른 다음에야 삶을 시작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1.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
우리는 익숙하게 소유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한다. “이만큼 모았다.” “이 정도는 이루었다.” “이쯤이면 됐다.” 소유의 삶은 성과와 축적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신앙생활마저도 때로는 이렇게 해석된다. “이만큼 했으니, 이제는 누려도 되지.” 봉사, 헌신, 예배, 헌금이 ‘쌓아 둔 공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성경의 신앙은 결코 완성의 소유가 아니다.
이에 반해 존재의 삶은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소유가 ‘가진 것’의 목록이라면, 존재는 ‘살아내는 태도’이다. 존재의 삶은 결과보다 방향을, 성취보다 관계를, 축적보다 변화를 중시한다. 어제보다 더 하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오늘의 선택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빚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2. ‘산 제사’― 존재의 중심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신앙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여기서 ‘제사’는 소유의 언어가 아니다. 무엇을 드렸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로 드려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더 놀라운 것은 ‘산’이라는 수식이다. 한 번 올려지고 끝나는 제사가 아니라, 매일 살아내며 드려지는 삶이다. 주일의 예배가 월요일의 태도로 이어지고, 기도의 고백이 선택의 기준이 되며, 신앙이 일상의 리듬을 바꾸는 삶—그것이 산 제사다.
산 제사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빚어지는 존재이다. 오늘의 나를 드리고, 내일의 나를 다시 드린다. 그래서 존재의 삶은 정지된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존재 방식이다.
3. ‘존재’는 방향이며, ‘산 제사’는 방법이다
존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방향의 언어다. 산 제사는 “어떻게 그 길을 걸을 것인가?”라는 방법의 언어다. 우리는 흔히 목표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태도를 바꾸면 삶이 바뀐다고 말한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태도에서, 더 깊이 드리려는 태도로. 더 안전해지려는 태도에서, 더 순종하려는 태도로. 이 전환이 일어날 때, 신앙은 소유의 껍질을 벗고 존재의 깊이로 들어간다.
산 제사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말을 아끼는 선택, 손해를 감수하는 정직, 미루지 않는 용서, 타인을 먼저 세우는 결정,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이 작은 선택들이 모여 ‘존재로 드려지는 삶’을 만든다.
4.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성경의 대답은 분명하다. 소유로 증명하는 인생이 아니라, 존재로 드려지는 인생으로 살라.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신앙이 아니라, 날마다 산 제사로 빚어지는 존재로 살라. 신앙은 “이만큼 했다”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오늘도 드린다”로 매일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의 삶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산 제사(living sacrifice)로 시작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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