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말씀영상 > 칼 럼
신앙은 동행 관계입니다
“내 앞에 서지 말라, 내가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뒤에 서지 마라, 내가 이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냥 내 옆에 걸어가서, 내 친구가 되어라.”
— 알베르 까뮈ㅡ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주길 바랐던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 서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했던 순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 뒤에 서세요”라고 말해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인생은 늘 그렇게 앞에 서거나, 뒤에 서거나, 누군가를 따르거나, 누군가를 이끌어야 하는 자리로 우리를 밀어 넣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가장 위로받았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누군가가 내 앞에서 방향을 제시해 줄 때였습니까? 아니면 뒤에서 등을 떠밀어 줄 때였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와서 같이 걸어주던 그 사람이 있었을 때였습니다. 해답을 주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버틸 수 있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마저도 ‘앞’과 ‘뒤’의 구조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이끄시는 리더이시고 나는 그저 따라가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 ‘앞에서’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옆에서’ 함께 걸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사41:10)이 말씀 속 하나님은 명령하는 리더가 아니라 동행하는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신앙을 원합니다. “하나님, 제 앞에 서 주세요. 제가 따라갈게요.” 혹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제 뒤에서 밀어주세요. 제가 해볼게요.” 하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네 옆에 있을게. 같이 가자.”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God with us’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 신앙은 통제의 관계가 아니라 동행의 관계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오디세이아를 통해 “떠남과 돌아옴”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10년의 전쟁과 10년의 방황 끝에 이타카로 돌아왔을 때, 그를 가장 먼저 알아본 존재는 화려한 환영단이 아니라 20년을 기다린 늙은 개, 아르고스였습니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명령도 없었습니다. 그저 곁에 있었던 시간이 그를 알아보게 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앞에서 이끄는 시간보다 옆에서 함께 걸은 시간이 우리를 하나님과 더 깊이 연결시킵니다.
지도해주는 신앙도 필요합니다. 가르쳐주는 신앙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누가 앞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옆에 있었느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필요한 신앙은 앞에서 지시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걸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오늘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도 앞에서 끌어주는 리더가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조언자가 아니라, 그저 옆에 있어주는 친구일지 모릅니다.
정답을 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방향을 제시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저 말없이 같이 걸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깊은 사랑이고, 가장 진짜 같은 신앙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교회안내 ㅣ 예배안내 ㅣ 오시는 길 ㅣ 이용약관 ㅣ 개인정보취급방침
주소 : (14344) 경기도 광명시 일직로 12번길 11, 서현빌딩 6층 꿈꾸는교회 TEL : (교회) 02-897-3194, 02-899-2742